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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골목길의 정적 속 미세소리 탐색

by 페이지! 2025.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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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요함이라는 이름의 무대

도시가 가장 조용해지는 시간은 새벽 3시 무렵이다.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 대중교통도 끊긴 시간. 사람의 발걸음은커녕, 차량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새벽 골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음향 실험실이다. 나는 이 시간대, 도시의 오래된 주택가 골목길에 앉아 ‘정적’이라는 특수한 배경 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집중적으로 탐색했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없는 듯했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 정적은 결코 ‘무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미세하고 섬세한 소리들이 그물처럼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소란 속에 놓치고 있었던 미세한 감각의 조각들이, 그 정적 속에서 하나둘씩 떠올랐다.

 

2. 소리의 결이 살아 있는 골목

새벽 골목의 첫 소리는 냉장고 압축기의 떨림이었다. 멀리 떨어진 가정집의 주방에서 흘러나온 듯, 규칙적으로 울리는 저음이 콘크리트 벽을 타고 느리게 퍼졌다. 그다음 들린 건 고양이의 발소리. 그것은 진동이 아니라 마찰에 가까운 감촉이었다. 콘크리트 바닥과 발바닥 사이의 접촉음이었고, 그 사소한 소리가 공기 속에서 의미를 가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뭇잎을 건드리지 않았기에 바람의 실체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전선줄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삐걱’ 소리를 통해 나는 그것을 느꼈다. 미세소리의 스펙트럼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 골목 구석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간헐적인 전선의 팽창음, 멀리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이 남긴 잔향 등… 정적 속 도시의 골목은 오히려 가장 풍부한 음향의 터널이었다.

3. 정적이 들려주는 감정의 깊이

흥미로운 점은 이 미세소리들이 단순히 감각의 관찰을 넘어서 감정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방울이 일정한 리듬으로 떨어질 때,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기다림'이나 '외로움'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정류장, 밤을 새우며 공부하던 책상 위가 떠올랐다. 새벽의 미세한 떨림 소리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의 잔재를 불러오는 ‘청각적 회로’ 역할을 한다. 새벽 4시 무렵,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의 경적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현실과는 상관없이, 그 소리는 마음속에서 '여행'이나 '떠남'이라는 상징으로 작용했다. 시각이나 후각은 공간 중심으로 기억을 호출하지만, 청각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감정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걸 다시 느꼈다. 정적 속 소리는 곧 내면의 소리였고, 그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4. 소음을 벗어나 소리를 듣는 법

이 체험을 통해 깨달은 점은, 우리가 평소에 ‘소리’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대부분 ‘소음’이라는 것이다. 반복적이고 강제적인 정보 전달의 도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새벽 골목길에서의 미세소리들은 내가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고 탐색한 소리였다. 그 순간, 소리는 하나의 예술이고 감각적 언어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단 한 번, 새벽의 골목에 나가 조용히 귀를 기울여보길 권한다. 시계 초침처럼 또렷한 ‘물방울의 맺힘’, 바람의 방향에 따라 흔들리는 ‘전선의 긴장’,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흔들리는 마음의 진동까지.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던 소리들은 사실 늘 존재하고 있었다. 그 소리들을 비로소 듣게 될 때, 우리는 더 섬세하고 깊은 감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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